매년 1천명 이상의 탈북민이 중국과 동남아 등을 거쳐 국내로 입국하는 그야말로 ‘탈북러시’ 시대.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거주 탈북민은 약 3만3,815명. 이제는 한국사회에서도 북한출신 이웃들을 만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다.
이들 탈북민들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와 북쪽에 남아있는 부모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을 음식을 통해 위로하는 북한 전통음식 명인이 있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09년 탈북해 올해로 13년째 북한 전통음식을 재현해내고 이를 국내외에 전파하는데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북한음식명인 장유빈씨(50)를 만나봤다.
▲장유빈 명인의 ‘통일음식문화연구원’
지난 10월29일 경북 포항시 남구 청림동에 소재한 ‘통일 음식문화연구원’. 이곳은 충북 청양에서 2년전 포항으로 이주한 장유빈씨가 운영하는 북한음식 연구소다.
이날은 ‘제10회 한국식문화 세계화 대축제’ 행사가 개최되는 날. 그녀가 손수 만든 약 100종류의 북한음식을 뷔페음식처럼 전시하고 참석자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날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전 보지 못한 북한음식들이 즐비하다. 개성보쌈김치, 꿩김치, 명태깍두기, 명태머리순대, 인조고기밥, 국수강정, 언감자떡, 황해도 고수무우김치 등 한국에서는 처음보는 음식들이 화려하게 전시돼 있다.
연구소를 가득 메운 이들중 상당수는 그녀와 같은 동병상련의 탈북민들과 가족, 그리고 부모세대가 북한출신인 이북5도 회원들이었다.
또 각종 음식대회와 행사장에서 그녀가 만든 북한 음식을 맛봐온 국내팬들과 SNS 친구들까지 직접 찾아올 만큼 그녀의 명성이 이미 한국사회에 알려졌음을 보여줬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이북5도 포항시연합회’ 라병강 회장은 “장유빈 명인은 탈북인들 사이에서도 성공적으로 정착한 모범사례”라며 “북한 서민들의 음식을 재현함으로써 향후 통일시대에 대비해 남과북이 음식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4대째 이어온 음식솜씨, 한국에서 북한전통음식 명인1호 지정
장유빈 명인의 음식사랑은 4대째 이어진 찰진 손맛과 음식에 대한 사랑이 비결.
함경북도 온성이 고향인 그녀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음식솜씨를 이어받았으며, 이제는 29세가 된 그녀의 딸까지 전통음식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야말로 4대 북한음식 전문가 집안이다.
북한에서는 한국처럼 개인이 일반 음식점을 운영할 수 없어 주문판매형태로 음식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12살때부터 어머니를 도우면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한국에서도 북한음식을 만드는 이들은 많지만 저처럼 북한사람이 북한음식을 연구하고 재현해내는 경우는 아마 처음일겁니다”고 말했다.
▲외식산업 박사과정의 맹렬여성
이같은 그녀의 노력은 지난 2016년 제1호 대한민국 전통음식 제1호 명인에 선정돼는 쾌거를 올렸으며, 지난해에는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상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북한 전통음식 명인으로서 국가대표의 자격을 갖춘 그녀는 루마니아에서 개최된 아시아 한식대회에서 한국대표로도 참여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북한전통음식 명인1호와 함께 아시아한식 국가대표 1호도 그녀를 부르는 또 다른 명칭들이다.
“음식전문가로서 제가 생각하는 통일은 밥상에서 시작된다고 봐요. 남과북의 이질적인 문화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음식을 이해하고 음미할 줄 아는 문화적통일이 중요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북한음식 교육에서부터 강연, 각종 축제장 등에서의 음식전시 등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현재 경주에 소재한 위덕대학교 외식산업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정도로 삶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이국땅과 같은 한국에서 외로움을 버텨내며 꿋꿋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그녀의 꿈은 뭘까.
“통일체험마을을 조성하는 것이 꿈입니다. 체제 때문에 북한을 떠났지만 많은 탈북민들이 자신이 자라온 고향마을을 그리워하고 음식을 먹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그들을 위로하고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통일체험마을을 조성함으로써 탈북민 들에게는 추억이,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음식을 통한 열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통일 대한민국의 꿈을 그리는 그녀의 열정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