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60여년전인 지난 1960년대,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최인훈이 야심적으로 펴낸 소설 ‘광장’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땅위에서 삶을 이어가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자 전후문학을 마감하고 1960년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광장’을 통해 이념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역작으로 뇌리에 기억되고 있다.
남한에서 대학을 다니다 학생운동 등으로 고초를 겪은후 이상적인 사회를 찾아 북으로 넘어간 주인공 이명준이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과 ‘자유’가 아닌 화석처럼 변한 북한의 밀실체제, ‘사회적광장’에 환멸을 느끼다 6.25 전쟁 참전과 포로생활을 거친후 제3국으로 떠나던중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한다는 게 광장의 줄거리이다.
그가 정전후 중립국인 제3국으로 가는 선상위에서 바라본 것이 바로 ‘푸른광장’. 지상에서는 볼수 없었던 ‘푸른광장’을 마침내 바다에서 발견한 그는 갈매기의 환각 속에서 몸을 던진다. 영원한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한반도의 땅위에서 좌우를 경험했던 주인공이 그토록 평생을 찾아 헤메던 ‘푸른자유’가 이 땅이 아닌 바다에 있었던 것이다. 이땅이 아닌 저 푸른바다, 발을 디딜 수 없는 저 허공, 그곳에 그가 평생 꿈꾸었던 노스텔지어인 ‘푸른광장’이 보였다는 건 현실적환상, 환상적 현실일수도 있다.
최인훈의 ‘광장’ 출간이후 60년의 세월이 흐른 2019년 한반도. 이땅에는 ‘푸른광장’이 있을까.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고, 나와 너가 마주보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평등한 사회가 펼쳐져 있을까.
우리가 힘을 합쳐 악을 물리치고, 진실이 승리할 수 있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세상인 ‘푸른광장’이 우리 삶 곳곳에 어머니의 품처럼 자리하고 있을까.
지난 9월 28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앞 광장에 일단의 군중들이 모였다. 그들의 구호는 ‘검찰개혁’, ‘조국수호’ 구호일색이었다. 소위 이땅의 진보성향 인사들이 절규하듯 내뱉은 말들은 집권여당과 청와대, 좌파인사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한쪽에서는 야유를 퍼부었다.
심지어 이날 집회 참가자수를 놓고 1백만이니 2백만이니 숫자로 서로 대치 할 만큼 그들만의 주장과 숫자놀음이 난무하고, 소위 보수진영과 야당에서는 ‘관제데모’로 단정할 만큼 편이 두쪽으로 나눠져버렸다.
5일 후인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의 집회. 서초동광장에서의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라는 구호대신 ‘문재인 하야’, ‘조국사퇴’ 등 대통령과 집권여당, 진보진영에 비판하는 구호가 일색이었다.
무엇보다 이날 집회의 백미는 군중의 수. 광화문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1.8km의 광장을 가득 메운 대규모 인파였다. 주최측은 320만명이 운집해 지난 2016년 촛불집회당시 170만명의 2배가량 많은 인원이라 말할만큼 전국각지에서 대규모인파가 모여든 것은 분명하다.
진보진영의 ‘서초동광장’과 보수진영의 ‘광화문광장’에서 우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이들의 광장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푸른자유’란 무엇일까.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남한과 북한의 체제에서 환멸을 느낀후 진정한 ‘푸른자유’를 찾아 동지나해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은 것처럼 우리도 결국 이 땅에서 벗어나 제3지대로 나가야 하는가.
그가 그토록 갈구했던 ‘푸른자유’를 선상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그 ‘자유’의 실체는 정말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몽환적인 것인가.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고, 선과 악이 분명한 자유, 이념과 진영의 포로가 아닌 인간의 잣대로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근본적인 평화의 세계. 그 푸른자유를 이 땅에서 더 이상 누릴 수 없단 말인가.
【정승화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