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C 뉴스】정명교 기자=세상이 달라져 시나브로 100세 시대가 됐다. 삶은 편리하고, 수명은 늘어나는데 살아가기는 갈수록 팍팍해지는 것은 왜일까.
이 시대, 아버지들이 향하는 곳은 어쩌면 가난하게 살았지만 인정이 넘쳤던 어린 시절, 아니면 푸른땡감처럼 서슬이 시퍼랬던 청춘, 그때가 아닐까.
40~50대의 중년, 흰머리가 검은머리를 압도하는 나이, 시쳇말로 중년으로 불리는 그들이 본 삶이란 어떤 색깔의 무늬일까.
올해로 51세, 100세 시대 반환점을 돌아 제2의 출발점을 향해선 평범한 직장인이 진솔한 이야기들을 엮어 만든 산문집이 잔잔한 여운을 주고 있다.
포항테크노파크에 근무하는 채헌 부장(51)이 「그래 아직 끝나지 않은 거야」란 제하의 산문집을 엮었다. 포항에서 태어나 학업이후로 대부분의 청춘을 고향에서 직장생활을 해온 그가 가슴속에 품었던 생각들을 한올한올 풀어헤친 삶의 편린들.
「포항, 지곡에서 보낸 순간들」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그의 이야기는 순전히 시골풍이 가득한 포항이야기들이다.
“2004년 초반부터 시작하여 올해 초까지 15년 이상 작성된 글들을 정리했어요. 다시 읽어보니 낯 뜨거워지는 내용이나 문장도 보이고,무엇보다 책을 낸다고 생각하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시작해야 미래가 바뀐다는 생각에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지만 큰 용기로 책을 낸 작가가 된 채헌 씨가 책 서문에 적은 글이다. 그의 말처럼 갈수록 팍팍해지는 경쟁사회 속에서 어느덧 중년의 언덕에 오른 직장인들이 퇴직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사이에서 고민하다 삶을 재점검하는 자서전적 산문집을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평범한 이들이 글을 쓴다는 것, 빡빡한 업무의 숲에 둘러싸여 있는 직장인들이 책을 낸다는 자체가 어쩌면 모험일수 있는 현대인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의식의 숲을 파헤치는 그들에게 책은 하나의 위안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언젠가 내 인생의 소붓한 이야기들을 엮어 책으로 내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이를 실천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채헌 씨가 이런 현실적 어려움 앞에서도 과감하게 책을 엮게 된 것은 글쟁이 출신인 그의 이력이 대변해준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첫 직장이 서울경제신문 정경부 기자 생활을 한 그의 궤적이 망망대해와 같은 문학의 세계로 안내했음은 능히 짐작이 간다.
포항시 흥해읍 달전리가 고향인 채헌 씨가 고향에 내려와 취업의 문을 두드린 곳이 바로 포항테크노파크. 올해까지 18년 동안 그는 포항의 미래 먹거리를 탐구하는 전략산업분야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의 책 주요 목차를 보면 첫장은 늦장가로 어렵게 얻은 초등학생 딸아이와의 여행기, 두 번째 장은 스포츠스타와 야구에 대한 단상, 셋째 장은 신변잡기로 마무리 하고 있다.
채헌 씨는 서문 인사말을 통해 “어쩌면 이 책이 앞으로 제가 더 유익한 콘텐츠를 생산하게 될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중년의 나이, 시퍼랬던 청춘의 땡감이 홍시가 되어가는 어떤 시간. 설움일수도 있고 후회할 수도 있는 삶의 중간지점, 다시 인생을 재정비해야 하는 아버지들의 시간, 그 정점에서 그는 책을 엮었다.
채헌씨의 경우처럼 지금 이시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 그리고 후배들에 밀려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수많은 중년의 직장인들, 그들에게 제2의 인생살이는 어쩌면 또 다른 혹성을 살아가는 것만큼 힘든 일인 줄 모른다.
그런 방황의 순간에 나를 재점검하고, 새롭게 무장할 수 있는 삶의 변곡점은 바로 나를 되돌아보는 한권의 책, 바로 진솔한 고백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중년, 모든 아버지, 그리고 오늘도 세상의 중심에서 질곡의 삶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든 홍시들에게 그래도 자신이 걸어온 삶이 제대로 익어 홍시가 되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증표, 한권의 책을 엮어봄이 어떨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