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TK)은 오랫동안 한국 보수 정치의 상징적인 기반이었다. 선거 때마다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 지형은 단단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을 보면 이 공식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발표된 3월2주차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당 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43%를 기록한 반면 국민의힘은 17%에 머물렀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무당층이다.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33%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유권자들이 기존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는 의미다.(자세한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참조)
더 충격적인 결과는 TK 지역에서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 TK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29%, 국민의힘 25%로 나타났다.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보수의 핵심 지지 기반에서 민주당이 앞서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무당층이 41%로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 지지가 강했던 지역에서 유권자 상당수가 정치적 선택을 유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여론조사상의 일시적 흐름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최근 TK 지역 정치 환경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란이다. 오랜 논의 끝에 추진되던 행정통합은 정치권 갈등 속에서 결국 사실상 무산됐다. 지역 미래 전략으로 제시됐던 대형 프로젝트가 좌초되면서 지역 사회에는 실망과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보수 진영 내부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정치적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내부 갈등만 반복되면서 지지층 결집력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보수 성향 응답자 가운데 국민의힘 지지가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무당층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층의 흐름은 더 심각하다. 조사에서 중도층 지지도는 민주당 42%, 국민의힘 9%로 거의 다섯 배 가까운 격차가 났다. 보수 정당이 중도 확장에 사실상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방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TK에서는 공천 경쟁이 곧 선거라는 말이 통했다. 그러나 무당층이 40% 안팎까지 늘어난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치적 균열이 시작되면 선거 결과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정치권이 이를 단순한 일시적 여론 변동으로 치부한다면 더 큰 착각이다. 지역 발전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내부 권력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TK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보수 정당의 안전지대가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TK 민심이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과거의 정치 공식에 안주하지 말라는 경고다. 그 경고를 외면한다면 다음 지방선거에서 ‘보수 텃밭’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지는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