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의 민주주의 운용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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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의 민주주의 운용방식

기사입력 2026.06.10 11:56    정승화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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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의 부실 투표관리에 항의하는 시민들)

 

선거는 숫자의 예술이다.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고, 득표율 몇 퍼센트에 정당의 운명이 바뀐다. 그 정교한 숫자의 세계를 지탱하는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무거운 물질이 바로 투표용지. 유권자가 손에 쥐는 그 종이 한 장은 국가 권력을 합법화하는 유일한 매개체이자, 민주주의 그 자체다.

 

그런데 대한민국 선거 행정의 총본산이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종이의 무게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모양이다. 지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관위가 투표용지 인쇄 하한 기준을 기존 60%에서 50%로 뚝 잘라낸 과정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이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위원들이 모여 치열하게 논쟁한 공식 회의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부서 간 의견을 대충 취합해 내부 결재 사인을 받고는 지침을 뚝딱 바꿔버린 것이다. 당연히 회의록 같은 기록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선관위의 이 안일한 탁상행정은 현장의 참사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과거 투표율이 늘 50%를 웃돌던 서울 송파구 같은 곳에서도 기계적으로 50%의 기준이 적용됐고, 투표 당일 투표소가 바닥나 유권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황당한 소동이 빚어졌다. 참정권의 현장이 선관위의 예산 절감 놀이터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선관위는 이 치명적인 무능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선거 직후 선관위가 슬그머니 내놓은 투표용지 부족 규모는 ‘50개 투표소, 4726이었다. 하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희용 의원실을 통해 닷새 만에 밝혀진 진짜 성적표는 참담했다.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무려 7194장의 용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당초 발표보다 무려 1.5배나 불어난 수치다. 표를 세는 기관이 자신들의 실수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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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고 무책임한집계 탓에 국민의 참정권은 길바닥에 방치됐다. 전국 26개 투표소에서 실제 투표가 전면 중단됐고, 서울 송파구 잠실2동의 어느 투표소는 무려 105분 동안 선거가 완전히 멈춰 섰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가 한 시간 반이 넘도록 투표용지가 오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어야 하는 황당한 풍경을 선관위가 연출한 것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현장 대처는 실소를 자아낸다. 부산 북구 화명1동의 한 투표소에서는 용지가 떨어지자 선관위가 현장 행정 공무원에게 옆 투표소에 가서 남는 용지를 빌려오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공무원은 선관위 직원 한 명 동행하지 않은 채, 혼자서 500m 거리를 달려 투표용지 50매를 직접이송해왔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의 이송과 관리는 철저히 선관위의 법적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혹여나 이동 과정에서 용지가 탈취되거나 위조되면 선거 전체의 공정성이 통째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인력이 없다”, “그게 가장 빠르니까라는 황당한 핑계를 대며 법적 책임이 없는 일반 공무원을 용지 셔틀로 내몰았다.

 

선관위는 늘 국민의 참정권 보장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저 귀찮은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나태한 관료의 전형이었다. 회의록도 없이 깎아버린 예산, 통계조차 불투명한 인쇄비, 무능을 감추려던 축소 발표, 그리고 현장 공무원에게 떠넘긴 위법적 땜질 처방까지.

 

표를 잘 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표를 던질 수 있는 권리와 환경을 완벽하게 수호하는 것이다. 종이 한 장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그 규모마저 속이려 든 선관위의 오만과 무능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서라도 이 해괴한 사태의 진상을 뿌리째 파헤쳐야 한다

 

선관위의 뼈를 깎는 인적·조직적 대수술이 없다면, 다음 선거에서 우리는 투표소 앞에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코미디를 또다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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