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마침내 가을, 그리고 디오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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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마침내 가을, 그리고 디오게네스!

기사입력 2018.08.17 16:32    정명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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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상을 다 가졌던 알렉산더 대왕이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 그대의 소원을 말하면 모두 들어 주겠다고 말하자 디오게네스는 지금 가리고 있는 햇빛 앞에서나 좀 비켜주라고 일갈해 절대 권력의 권위를 한순간에 무색하게 했다.
 
열반하신 무소유의 선각자 법정스님도 세속의 욕망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저 푸른창공과 들꽃, 구분 없이 스며드는 햇살, 골짜기를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는 마음 설레어 했다. 이렇듯 가을에는 세상만물이 황금빛 천연보석으로 변한다
 
디오게네스의 황당한 답변에 알렉산더 대왕을 추종하는 무리들과 간신배들은 코웃음을 쳤을지 모르지만 곡식과 과일이 익어가려면 가을햇살이 꼭 필요하듯 세속적 권력과 물질보다는 존재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궁구했던 디오게네스에게는 알렉산더 대왕이 가리고 섰던 햇살이 더 중요했을 성 싶다.
 
그런 가을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매년 돌아오는 가을이건만 지금 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난 여름 맹렬했던 더위처럼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알렉산더대왕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디오게네스의 무심한 표정, 그 장면이 오버랩 되는 하수상한 날씨, 서글픈 세월 때문이다.
 
온 나라를 들쑤셨던 지방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수많은 선거관련 사범들이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낮에는 더위에 지치고, 밤에는 열대야의 어둠속에서 우린 지도자들의 민낯을 TV로 지켜보며 황망해 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한단 말인가
 
정신없이 선거분위기에 휩쓸려 봄이 떠나가고, 찜통같던 더위에 쫓겨 에어컨과 선풍기를 연인처럼 끌어안다 그렇게 여름도 하릴없이 가고 있다. 진짜 가을이 올까 했는데 설마했던 가을이 어김없이 오고 있다. 언제 더웠는가 싶을 만큼 선선한 바람이 불고 귀뚜라미가 울어댄다. 그네들은 가을소식을 전하려 어떻게 여름을 견뎠을까
 
계절은 이렇게 순리를 쫓아가건만 정치권은 여전히 뜨거운 여름의 한복판에 서있다. 이름도 생소한 소위 드루킹 사건으로 이제 막 당선된 도지사가 검찰에 소환되고,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올랐던 명망가는 여비서와의 성추문으로 재판정에 섰다
 
무죄가 났고,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동반자가 영원한 적군처럼 서로 대치하고 있다. 어쩌면 태초부터 이렇게 원수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일까
 
전직 대통령 두분은 감옥에서 치열한 여름과 사투하고, 서울역앞에서는 오늘도 여전히 태극기가 휘날린다. 민족의 태극기가 진영의 프레임속에서 펄럭이고 있다. 밖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만나고, 안에서는 여야 정당끼리 남북 대치만큼이나 얼굴을 붉힌다. 사라진 이념시대에 새로운 진영논리가 만들어져 마음속 삼팔선이 그려지고 있다
 
꾸미기_20150910_121908.jpg
 
위정자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일까. 그들이 포토라인앞에서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못을 해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위선인가. 도피인가. 서민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우린 이렇게 똑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정의가 다르고 행복이 다르다.
 
권력자의 정의는 권력이고, 서민의 정의와 행복은 웃음인 것일까. 연일 방송과 신문,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위정자들의 추태에 서민들의 어깨는 더 쳐져만 간다.
 
모두가 화려한 권력에 드리워진 응달의 모습들이다. 이들에게 디오게네스가 찾는 가을햇살 따위는 관심 밖이다. 저 알렉산더 대왕이 가진 화려한 금장과 수많은 신하, 막강한 절대 권력의 위엄, 바로 그 특권에만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가을은 지난여름과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이기고 권력을 쥐면 그것이 따뜻한 봄이고, 넉넉한 가을인 것이다. 모든 것을 진영의 논리로, 당파의 논리로 보고 듣는 정치권에서 순리를 말하고 계절의 풍요를 논하는 것은 객쩍은 짓인가.
 
누가 뭐래도, 그래도 어김없이 가을은 왔다. 서울에는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시골에는 이미 가을이 도착했다. 스마트문명은 도시가 빠르지만 자연문명은 시골이 더 빠르다. 시골의 가을은 장독대에서 출발한다.
 
지상의 햇살 수신기 장독대가 햇살을 받아 감나무에 반사하면 여름내 시퍼랬던 땡감은 어느새 불그스레 홍시로 변해버린다. 그 곁에 널린 고추도 덩달아 빨갛게 물들어 익어가면 여름짝짓기를 놓치고 홀로 남은 매미는 분통이 터져 괜시리 목청 터져라 울어대는 게 시골의 가을이다.
 
햇살이 가을을 영글게 한다면 달빛은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여름이 선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달의 정취에 취하는 문텐의 계절이다. 낮 가을이 황금빛이라면 밤 가을은 흑백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티끌 없이 공활한 밤하늘, 백열등처럼 둥근 보름달, 그 여백사이로 소슬바람에 떠다니는 흰 구름, 담 밑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택배가 된다면 여의도에도 시골가을을 배달해주고 싶다. 똑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계절을 잃어버린 서울의 가을, 그 속에서 자기만의 계절을 만들어가는 스마트문명. 속도에 눌려 서정을 잃어버린 한국정치가 이 가을 내가 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한 알렉산더 대왕의 말을 한번쯤 되새겨 보면 어떨까
경북뉴스통신/정명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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