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들어온 수조가 28도까지 올랐습니다. 물고기보다 먼저 우리가 숨이 막힙니다.”
9일 오전, 경북 영덕의 한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만난 어업인 박모(54)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바닥만 한 광어 수백 마리가 물 위에 뒤집혀 떠오르는 모습이 그의 눈 앞에 매일같이 펼쳐지고 있다. 한창 커야 할 물고기들은 뜨거운 바닷물에 지쳐 허우적거리거나, 이미 움직임을 멈췄다.
경북 동해안에 고수온 현상이 한 달 가까이 일찍 찾아오면서 양식 어업인들이 사실상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고수온은 바닷물의 수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양식 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급기야 집단 폐사로 이어지는 재난성 기후 현상이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경북 동해안 표층수온은 21.4도에서 25.9도 사이를 기록했다. 포항 월포는 24.0도, 구룡포 하정 23.3도, 영덕 앞바다는 24.5도까지 올랐다. 일부 양식장 내부로 유입된 해수는 28도까지 상승해 생물의 생존 한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혜정 경북도 어업기술원 수산물안전팀장은 “수온 25도부터 양식어류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27도를 넘기면 폐사가 본격적으로 발생한다”며 “현재는 고수온 ‘예비특보’지만, 작년보다 한 달 앞선 수준으로, 언제 ‘주의보’로 격상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립수산과학원은 9일 오전, 동해안 일대에 ‘고수온 예비특보’를 발령했다. 고수온 특보는 수온이 25도 이상 지속되거나 도달할 가능성이 높은 해역에 선제적으로 내려지는 조치다.
△양식장은 냉방장치도 없다. 그냥 맨몸으로 버틴다
영덕군 강구면에서 넙치(광어)를 키우는 어민 김모(61)씨는 “양식장에 에어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닷물은 계속 데워지는데 속수무책”이라며 “기후변화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생계를 위협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또 “정치망 어선들조차도 최근 참다랑어(참치)가 너무 많이 잡혀서 대부분 바다에 버리는 지경인데, 그것도 결국 해수 온도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양식 어민들 사이에서는 “기후재난에 대한 보험도 없다”는 푸념도 터져나온다. 일부 어민은 매일 수온을 측정하며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다. 1도씩 오를 때마다 사료량을 조절하고, 바닷물을 새로 공급하는 빈도를 높이는 식이다. 하지만 별다른 뾰족수는 없다.
△작년보다 더 큰 피해 우려, 정부 대책은 늑장 대응
지난해 고수온 피해로만 전국에서 양식어류 1010만 마리가 폐사했다. 피해액은 142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그보다도 빠르고 더위의 강도도 높아져 ‘역대급 고수온 재난’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수산 전문가들은 특히 경북 동해안이 고수온의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지역은 해류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느리고, 지형적 특성상 여름철 태양열 축적이 빠르기 때문이다.
수산전문가들은 “지금도 일부 양식장에서 광어 폐사가 늘고 있다”며 “예비특보가 아니라 이미 ‘주의보’ 수준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대로라면 8월이 되기도 전에 수온 30도를 넘길 수도 있다”며 “정부는 재해 예방 차원의 즉각적인 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