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의 진로는 언제나 ‘첫 발’이 말해준다. 산업정책이든 지역균형발전이든, 집권 초기의 국책사업이 향하는 방향은 그 정권의 국정 철학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2조원 규모의 AI컴퓨팅센터 국책사업’은 이재명 정부의 향후 국가 운영방향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만하다. 포항을 비롯해 부산, 광주, 대구, 안동, 강원도까지, 말 그대로 전국의 지자체들이 이 사업 유치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울은 물론이고, 수도권 외곽까지 참여 열기가 뜨겁다.
이 사업은 단순한 지역개발 수준을 넘어, 향후 대한민국 산업의 ‘판’을 통째로 바꿀 핵심 기반이 될 것이다. 고성능 AI연산 인프라는 반도체, 바이오, 신약, 차세대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미래 AI산업 생태계의 구심점을 이룰 ‘디지털 심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국책사업의 첫 주인공은 누가 될까.
관측은 엇갈리지만, 정치권 안팎의 일반적 분위기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아성이자 표밭’인 호남권 혹은 수도권 유력 지자체 쪽으로 기운다. 실제로 광주는 이미 대규모 AI단지를 조성 중이고, 수도권은 정치적·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중량감을 갖춘다.
반면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경북은 이번 선정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재명 정부 들어 TK(대구·경북) 지역은 정부나 여당과 소통할 수 있는 핵심 창구가 거의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권을 잃은 지역’이란 냉혹한 현실 앞에서, 지역은 존재감보다 ‘고립감’을 더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특히 포항은 포스텍과 방사광가속기,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 국내 최고 수준의 과학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광역지자체의 지원과 정치적 뒷심에서 경쟁지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역 관계자들의 우려다.
그나마 최근 안동 출신의 권오을 전 의원이 보훈부장관으로 기용되며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불리한 정치지형을 뒤집기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AI컴퓨팅센터 유치전은 단지 한 지역의 산업 유치가 아니다. 그것은 ‘이재명 정부가 대한민국의 미래산업 중심축을 어디에 두려 하는가’, ‘또 어느 지역을 국가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
이재명정부가 공정과 상생을 내세운 정부라면, 지역 정치색이 아니라 사업의 본질과 전략적 가치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AI산업은 더 이상 특정 도시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산업을 어디서 꽃피우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전체의 글로벌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업의 방향마저 정치에 밀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AI 국책사업의 첫 단추가 과연 ‘미래’를 향해 제대로 꿰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지금의 사법부처럼 ‘난마’에 휩싸여 정치적 저울로 기울지 국민들이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