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의 전성기였던 지난 1980년대, 삼성과 해태구단에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선수가 있다. 바로 ‘제2의 장효조’로 불렸던 정성룡선수.
10여년의 프로생활을 마감하고 이젠 포항에서 직장인생활을 하는 그의 늦둥이 막내 아들이 미래 야구스타를 꿈꾸고 있어 벌써부터 야구인들사이에 주목받고 있다.
휴일이었던 지난 19일 오후 3시, 포항시 남구 양학천로에 위치한 포항유일의 야구부가 있는 대해초등운동장. 비지땀을 흘리며 야구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프로구단 삼성과 해태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정성룡선수와 그의 아들 정영광군(13). 연신 연습 볼을 던져주는 아빠 앞에서 다부진 체격의 영광군의 배트가 불을 뿜는다.
고교시절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으로 삼성에 입단해 화제를 모았던 정성룡선수. 이제 50대 중반의 장년으로 야구가 아닌 일반 직장인생활을 하는 그와 늦둥이 아들 영광군이 걸어가는 야구인의 길은 어떤 운명이 겹쳐져 있는 것일까.
▲ 프로야구선수출신 아버지가 본 아들 정영광군의 야구
올해 6학년이 된 정영광 군의 포지션은 유격수. ‘야구수비의 꽃’이라 불리는 유격수를 맡을 만큼 몸이 빠르다는 말이다. 4학년부터 야구선수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3년째다. 신장 162㎝, 60kg의 단단한 몸매는 아빠인 정성룡선수와 빼박으로 닮았다.
“연습경기에서 11타수 9안타 5홈런을 날릴 정도면 장타력이 있다고 봐야겠죠” 타격연습을 도와주는 코칭역할의 아빠가 본 아들의 야구비전은 하늘만큼 푸르다.
영광이의 백넘버는 1번. 대해초 야구부원 22명가운데 주전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미 전국초등부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주목받는 선수.
“야구는 순발력과 힘, 정확성 등 3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하는데 그런점에서 영광이는 합격선에 든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야구를 재미있어하고 부지런히 연습에 매진하는 것이 아빠로서 자랑스럽습니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코치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아빠가 있어 다른 학생들에 비해 특별훈련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 야구에 대한 회한과 2세 야구시대에 대한 꿈
“어느덧 제가 50대 중반이 됐네요. 포철공고 창단멤버로 프로야구 최초로 고교출신 입단으로 주목받은게 얹그제 같은데 까막득한 과거가 됐습니다”. 지난 1984년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해 1995년 해태타이거즈에서 은퇴할때까지 10여년동안이 그의 야구인생의 정점.
제2의 장효조로 불리며 프로구단들의 등쌀에 대학도 포기하고 바로 프로에 입단할 만큼 유명세를 탔으나 그것이 화근이 돼 결국 오래지않아 프로에서 하차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은퇴후 1996년 모교인 포철공고에서 감독생활도 하고 야구교실도 운영하는 등 야구와 연관된 일을 했으나 여의치 않아 7년 전부터 일반직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영광이가 저의 피를 물려받아 야구인의 길을 가려고 하니 부모로써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해야죠” 운동처방사인 아내와 1남2녀의 가족을 둔 정성룡씨의 모든 꿈은 이제 늦둥이 아들 영광군에게로 향했다.
포항유일의 야구부로, 경북지역 65개 초등학교 가운데 구미와 경주 등 3개초등학교에서만 야구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대해초 야구부를 이끌고 있는 정기문감독도 그의 야구후배이기도 하다.
“모든 체육이 그렇듯이 야구도 어렵고 힘든 운동입니다. 아이들에게 힘든 야구를 시키지 않으려는 부모님들이 많아 청소년 야구부가 자꾸 줄어들고 있는 게 아쉽습니다. 영광이가 저의 뒤를 이어 한국야구를 빛내줄 인재로 자라나는 것이 부모로서 바람이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인의 길을 걸어가는 아들, 늦둥이 아들의 꿈을 응원하며 묵묵히 뒷바라지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때 한국야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외야수 정성룡선수’에 대한 응원함성이 오버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