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가 피었습니다. 흰색과 빨간색, 그리고 불그레한 홍조색의 봉선화가 담 밑에 피었습니다. 심지도 않은 봉선화씨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그렇게 스스로 봉선화가 피었습니다.
봉선화를 보면 누이가 생각납니다. 어린시절 손톱에 꽃물을 들이던 누이는 예순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밤새 열손가락 마디에 실로 묶은 봉선화 꽃잎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하던 누이의 옛 모습이 아련합니다.
비가오면 저 꽃잎이 떨어질텐테 이 여름 소나기가 두렵습니다. 태풍속에서도 살아남은 저 봉선화 꽃잎. 어디서 저 끈질긴 힘이 솟아났을까요.
1920년 일제의 압박 속에서 민족의 아픔을 그리며 노래지은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가 머릿속을 울립니다. 지금 일본의 행태를 보며 민족과 함께 수난의 역사를 보낸 저 가냘프지만 강인한 선홍빛 봉선화를 다시 봅니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